흑사병 원인 증상 치료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중세 유럽을 덮쳐 전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데 큰 영향을 끼친 질병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우리는 흑사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중등 교육과정에서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세계사에 특히 유럽 인구의 2명 중 1명이 사망하였을 만큼 끔찍한 바이러스성 질환이었는데 당시 유럽의 흑사병을 바라보는 상황 인식, 역사, 원인, 증상, 치료법을 오늘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흑사병이 출현하였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환자들마다 퍼지는 질병으로 인지를 하지 못하고 죽은 쥐를 자신의 간지러운 부위를 문지르고 있었으며, 미신과 주술에 의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는데 이로 인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안타까운 인명의 피해가 급속히 증가되었는데 당시 유럽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가이면서 젊은 의사로 활동을 하면서 흑사병에 노출되어 고통을 받는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당시 일화를 살펴보면 노스트라 다우 무스가 콜록콜록 되는 환자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침대에는 환자의 얼굴에 엄청난 흉터 자국과 간지러움에 피딱지가 앉을 만큼의 흉터 그리고 고통의 몸부림을 지를 때 당시 시대적인 흑사병 치료법과 달리 노스트라다무스는 물을 끓이고 시신을 땅에 묻는 방법을 하였으며, 당시의 유럽에서는 위생이라는 개념이 1퍼센트도 없어 자신의 분변을 창문 넘어 던지고 있었을 만큼 질병에 상당히 취약하게 노출된 상황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의사로서 자신의 지역 사람들에게 위생의 개념을 일깨우면서 상하수도를 만들자고 하였으며, 죽은 시신의 물건을 절대 사용하지 않고 불태워야 한다 주장을 펼쳤습니다. 흑사병을 정의하면 급성 열성 전염병이라 불리는 것으로 페스트균의 일종으로 여전히 지구 상에 존재를 하는 강력한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다.
14세기 중세 유럽을 덮친 페스트균의 질병중의 하나인 흑사병이 대단한 공포를 가져다주어 흑사병이 고유 명사로 사용되어지는 상황으로 원인을 살펴보면 흑사병도 방생하는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표적인 것 세 가지를 살펴보면 라래톳은 40도에 육박하는 전신의 발열과 근육의 시큼 거림과 함께 찾아오는 통증 그리고 머리의 편두통을 같이 동반하는 경우가 흔한데 대체로 발병한 순간으로부터 2일에서 1주일 내 퍼져 나가는 증상을 보인다. 그리고 폐렴성 흑사병을 살펴보면 세 가지 흑사 병중 가장 무서운 단계의 것으로 가래톳 증상은 기본으로 추가하면 흉부에 강한 압박성 통증과 기침 가래를 비롯한 감기성 증상과 입에서 피를 토하는 각혈 증상도 동반하는 것이며, 패혈증성 흑사병을 알아보면 몸 전신에 출혈이 생겨 피부를 뚫고 피가 샘솟는 것으로 이런 다양한 흑사병 증상으로 인류의 위기라고 당시 중세 유럽의 사람들은 공포심을 가지고 이를 대처하려 하였지만 앞서도 여러 번 언급을 하였다시피 위생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라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흑사병 증상을 알아보게 되면 주로 죽은 시신이나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는 쥐 나 진드기성 벌레들이 더러운 환경에서 서식하는 사람들의 집에 침투하여 음식이나 물에 들어가 오염을 시켜 그것을 섭취한 사람들과 이불이나 베개에 진드기나 쥐가 달려들어 직접적으로 사람과 신체적 접촉을 통해 감염이 되는 경우로서 설치류과에 의한 경우가 가장 높은 원인 중의 하나로 지목을 받고 있으며 여전히 페스트균의 한 종류로 아프리카와 동남아, 남미 일대에 유행하는 이런 종류들의 질병들은 낮은 위생 환경과 의료 수준이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가깝게는 2009년 중국의 소수민족 칭하이 성에서 감염된 4명 중 1명이 사망할 정도로 높은 무서운 질환으로 판명이 나자 당시 중국 정부는 300명이 넘는 주민을 강제 격리시키고 그 마을을 불태워 버리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흑사병 치료법은 의외로 현재 수준의 의료 체계에서는 쉬워서 항생제를 처방받고 투약만 하면 빠르게 회복이 가능하지만 이를 별거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차일피일 미루게 될 경우 발병 하루만에 또는 장기라도 1주일 내로 사망하는 빠른 속도의 사망률을 자랑하는 것이 흑사병으로 아무리 선진 의료 체계와 함께 위생 상태가 과거 중세 유럽과 달리 좋아졌다고 하여도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를 위한 노력만이 환자를 살리는 길이며, 같이 생활하는 가족들을 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최소 7천5백만에서 2억 명의 사망자가 속출하였다는 일화가 있으나 구체적인 통계가 마련되지 않은 당시라서 어느 정도 사망하였는지 숫자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2명 중 1명이 사망하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 그 당시 유럽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흑사병은 현재의 아프리카와 와 가난한 나라들에서 발생하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할아버지 격으로 원인과 증상은 약간씩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현미경을 통한 바이러스 균의 관찰과 죽은 사망자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여 관찰한 결과 거의 유사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기에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도 흑사병 발생 원인과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료가 어렵고 무서운 질병으로 우리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바이러스라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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