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 아버지 나이 딸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 오는 대중 가수는 드문 것이 현실이며,혼혈이라는 선입견과 차별을 극복하며 현재 최고의 입지에 올라 있는 가수 인순이 아버지 나이 딸에 관해 살펴 보겠습니다.
인순이 나이 및 프로필 |
가수 인순이 본명은 김인순,인순이 나이는 1957년 4월 5일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여 현재 63세(만 62세)로서 78년 희자매 1집으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가수 인순이를 표현하는 단어로 "시대를 넘나드는 파워 보컬리스트"로 지칭되고 있는 그녀는 국민 가수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지만 인지도와 가창력등에 비해 히트곡이 상당히 적은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 입니다.
그나마 조PD가 피처링에 참여한"친구여"와 "거위의 꿈"은 시대를 아우르는 폭발적인 공감을 받으며 누구나 인순이의 대표곡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희자매 시절에도 인기곡이 있었으며 나는 가수다 경연을 통해 발표한 "아버지"의 히트와 "밤이면 밤마다"가 그나마 그녀를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순이 아버지와 혼혈 |
인순이에 관해 국민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바로 그녀는 한국인 모친과 흑인 미국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서 현재도 여전히 혼혈 가정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인식이다 보니 당시 인순이가 성장하던 시기는 현재 보다 더 엄격하고 그녀에 대한 선입견이 심하였던 시절을 살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군이었던 부친은 모친이 인순이를 출생하자 파렴치하게 나몰라라 도망한 케이스로 당시 미군 부대 주변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 흔하게 벌어졌다고 하며,설사 미국으로 남편을 찾으러 간 여성들이 아이를 남편에게 빼앗기는 사례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미식축구 선수로 유명한 하인스워드의 사례가 이러한 현실을 대변한다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인순이 아버지와 몇 통의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은 있지만 이후 연락이 끊어 졌으며 한번도 부친을 만나 뵌 적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수로 입지를 굳힌 이후에도 보이지 않는 혼혈이라는 굴레를 씌워 그녀를 차별한 사례도 종종 있어 왔다고 전해 졌으며 그녀가 딸을 출산할 당시 자신과 같이 혼혈로 출생하여 한국에서 차별을 받고 자란다면 미국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 보내 같이 생활하면서 차별과 놀림을 조금이라도 덜 받게 하려고 미국에 원정출산을 가서 하였다고 발언 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순이 아버지라는 노래는 자신이 혼혈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과정을 무덤덤하면서 슬픈 사연을 애절하게 표현하여 많은 이들의 공감과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인순이 딸이 아버지의 외모를 많이 닮아 딸과 이별을 하지 않고 한국에서 딸과 같이 한국인으로 살았다고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순이 딸에 관한 정보는 하단에서 더 살펴 보겠습니다.
인순이 가수 인생 |
홀어머니가 힘들게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 그렇듯이 인순이 역시 어린 시절 혹독한 가난속에 성장하여 중학교만 졸업하고,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때 쯤 가수 김완선의 이모이자 프로듀서로 유명하였던 한백희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백희의 댄서로 활동하던 인순이가 우연히 인순이의 노래를 듣고서 자신 대신 인순이를 무대에 올리면서 가수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데 그 당시 연습생 시절도 없었고 생계를 위해 가수를 하였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희자매의 대 성공 이후 팀이 해체되지만 한백희를 따라 인순이는 홀로 솔로 가수로 활동하면서 "밤이면 밤마다"를 83년 발표하여 엄청난 히트를 치게 되는데 여전히 노래방이나 음악 프로 경연에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노래로 입지를 굳히게 만든 인순이의 파워풀한 가창력이 한몫을 하였기에 가능한 결과라 본다.
한백희의 조카인 김완선을 서포터하자 자연스럽게 한백희와의 관계가 소홀해지면서 한백희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너는 지는 해,그 아이(김완선)는 뜨는 해"라고 들었다고 무릎팍 도사에서 당시 밝혀 논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90년대 KBS 열린 음악회를 통해 다양한 장르 댄스,트로트,재즈를 비롯하여 민요까지 다양하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 잡는 노래를 부르면서 큰 인기를 누렸으며,80~90년대 트로트가 인기를 끌었던 당시 트로트 보다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무모한 도전(?)하여 주변의 우려를 사기도 한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2004년 조PD의 피처링으로 더 유명해진 "친구여"의 음반 발표로 음악캠프3주 연속1위를 달성하였으며 여전히 노래방을 비롯하여 대중들이 좋아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노래라 할 수 있으며,2007년 카니발의 "거위의 꿈"을 리메이크하여 연 이은 히트작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거위의 꿈이 정치색을 띄었다는 특정 집단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며 노랫말 가사처럼 어려운 역경을 극복 또는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에 항상 등장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각종 음악 경연 프로에서 어린 후배들과 경연을 하면서 대중들의 마음을 홀리는 노래를 선사하여 매번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면 큰 이슈를 만들어 실검에 자주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인순이 딸 |
앞서도 인순이 딸에 관한 정보를 전해 드렸는데 참고하여 부연 설명을 드리면 인순이 딸은 머리가 명석하여 2017년 TVN 예능 뇌섹시대 문제적 남자에 게스트로 딸 박세인 씨가 출연하게 되어 화제를 낳았습니다.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교로 불리우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과 수석을 차지하였으며, 졸업한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 취업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으나 퇴사후 한국에서 살면서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어를 비롯하여 4개 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순이 논란 정리 |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각종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사실만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1.예술의 전당 보이콧 사건:때는 바야흐로 2008년 데뷔 30주년을 맞은 인순이가 예술의 전당에 대관 신청을 하였으나 퇴짜를 맞자 기자회견을 열어 대중가수를 무시하는 듯한 섭섭함을 토로하는 인터뷰를 하여 말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예술의 전당은 오페라와 클래식의 전유물이라 대중음악을 무시한다는 말들이 있어 왔으나 당시 수익성 측면에서 적자 행진을 기록하던 예술의 전당측이 갈팡질팡이라 표현 될 만큼 누구는 허용하고,누구는 허용하지 않는 처사로 입방아에 오른 적은 있으나 시기의 문제일 뿐 대중가수를 홀대한 적은 없다 보인다고 합니다.
2.미미시스터즈 무레 질타 사건:장기하와 얼굴들과 함께 이문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예정된 인순이는 대기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멤버 미미 시스터즈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었으나 평상시 컨셉인 무뚝뚝함을 유지하는 미미 시스터즈가 선글라스를 착용한채 인사를 받아 주지 않자 인순이가 불쾌함을 토로하며 방송을 펑크낼 뻔한 사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때 장기하의 미니홈피가 엄청난 댓글 공격에 시달리기도 하였으나 둘이 서로 이해하고 화해를 가졌다고 합니다.
3.3번에 걸친 탈세 사건:2008년,2016년,2017년 보도에 의해 알려진 그녀의 탈세 사건으로 검찰 고발이 벌어 졌으며 당시 신문 기사에 의하면 그녀의 탈루액이 무려 60억에 달한다는 보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해당 사건에 관한 그 이후 정보는 제가 찾지 못해 여기까지만 서술 하겠습니다.
한국의 대중 가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순이 아버지 나이 딸에 관한 정보를 적어 보면서 앞으로 그녀의 승승장구와 행복을 기원하면서 여러 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스타로서 현명한 대처를 바래 보면서 이만 글을 마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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